스승의 날을 자축하다.
남들에게 축하받으면 안 되는 날처럼 되어 버려서 '이건 왜 만들었나?' 싶은 '스승의 날'
스승이 없는 것인가? 스승을 축하해 주는 이가 없는 것인가?
공교육 현장에서, 특히 학생자치회가 있으나 학생들 스스로 자치가 잘 안되는 초등학교 현실판 이야기를 해보련다. *중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주관하는 다양한 행사로 다채로운 이벤트를 경험한다는 선생님들의 제보(sns팔로잉 친구들의 경험담)가 있음
지난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마련한 (다회용/ 매년 재활용) 카네이션을 달고, 학교에서 준비한 큰 케이크를 교장선생님과 전교 어린이회 임원들이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방송실에서 생중계하고, 각 교실에선 시청하며, '얘들아, 오늘이 스승의 날이란다.' 하고 알려주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학교에서는 이음학교라 같은 건물로 이어진 바로 옆에서 중학교 모습을 잠깐이나마 관찰할 수 있었다. 5월 14일은 오케스트라의 등교맞이 연주회가 있었다. 이음학교 교장으로서 중학교 및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는 공연 관람 홍보을 위해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하는 교직원분들을 향해 열심히 영업을 하고 계셨다.
연주곡중에 '스승의 은혜'라는 곡도 있어, 시의적절한 선곡임에 틀림없었다. 출근하다 말고 학교 중정에 마련된 연주회장에서 몇 곡의 연주를 들으며 중학생 오케스트라 단원의 실력에 놀라고, 그간 화음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신 지도 선생님의 노고를 떠올렸다. 예쁘게 차려입으시고 지휘봉을 드신 예체능부(?) 부장선생님은 주어진 미션을 담담히 수행하고 계셨다.
드디어 스승의 날이 되었다.
주변 선생님들 사이에서 스승의 날이 없는 게 차라리 낫단다. 괜히 어정쩡하고 서글프고, 뭐 그렇단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가?'로 깊이 생각하기 싫다. 남들이 축하 안해주면, 그냥 자축하면 되는 거잖아. 마음만이라도 동료선생님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수고했다고,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자 맘 먹으며 출근길에 나섰다.
유리문 너머의 중학생들이 기다란 풍선을 갖고 분주히 복도에서 교실로 드나들고 있었다. 뭔가 재미난 일을 하고 있는듯 미소가 얼굴에 한가득이다. 이벤트의 'ㅇ'을 기대할 수 없는 초등학교 2학년 교실문 열쇠는 여전히 내가 직접 열었다. 가만히 업무만 볼 수 없어 작년 학년부장선생님 교실로 방문했다. 우리의 날을 서로 축하하기 위해서!
그런데 학교 메신저에 새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선물 1탄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교무부장 선생님, 교무실 공무직 선생님들이 함께 애써 준비해 주신 선물들.... 선물 받은 우리가 반했어요!


선물 2탄
등교하는 귀여운 꼬맹이 몇 명이 편지와 직접 만든 작품 등을 내민다. 구입한 물건은 받을 수 없다고 말했더니 잘 알아 들었나 보다. 쉬는 시간 작년 제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온다.
"줄을 서시오~~.", "아, 이놈의 인기 어쩔거야~~ ㅋㅋ"
"선생님, 스승의 날 축하드립니다."
"그래, 찾아 주어서 고마워."
그냥 보내기 뭐해서 괜히 악수를 청해본다.


선물 3탄
급식실에서 특별히 잔칫상 콘셉트로 준비해 주신 발아현미밥, 한우소갈비찜, 한식버섯잡채, 바지락전복미역국, 오이김치, 스승의 날 마카롱.... 2025년 스승의 날을 우리 학교에서 맞아 참 행복합니다.

선물 4탄
학년 부장님의 호출, 수업을 마치고 지친 몸을 끌고 학년 연구실로 가보니 당근 당근 당근... 당근케이크와 건강 음료까지, 쿠팡의 도움을 받아 준비해 오셨다.
"어머머, 부장~~ 님~~~!! 이러기 있기? 없기?"
"있기!! ㅎㅎ"

선물 5탄
학교 친목회에서 행복의 나라에서 플렉스 할 수 있도록 '다이소 모바일 상품권' 5,000원권을 쏴주었다. 음뫄~~ 센스쟁이들!

우리끼리 북 치고 장구 친 스승의 날, 제자들의 손 편지 피처링과 어우러져 흐뭇하게 마무리되었다.